211014/ 전화일본어 1주차 - 후한 채점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대망의 첫 전화일본어 수업...! 목요일 2시부터 2시간 동안 하는 것으로 신청했다. 학교 합연실에 있다가 1시 57분쯤 지하 라운지에 가서 전화를 받으려고 허겁지겁 내려갔다. 정말 딱 2시 정각에 전화가 걸려 와서 두근두근 하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이 나를 기억 못 하시면 저번에 레벨테스트 받았었다고, 선생님의 침착한 목소리가 좋아서 등록했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웬걸 레벨테스트 받았던 걸 기억하고 계셨다. 왠지 민망하고 부끄러운 기분... 흑흑
첫날부터 교재를 바로 나갈 줄 알았는데 (그리고 교재 파일이 생각보다 쉬워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첫날이니까 이것저것 스스로에 대한 소개를 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해 주시겠다고 했다. 몇몇 질문은 레벨테스트 때 물어봤던 것이긴 했는데, 기억에 남는 질문들을 남겨 보자면 지금 학생인지, 전공은 뭔지, 나중에 외국에서 가르치고 싶은지 한국에서 가르치고 싶은지, 일본은 와 봤는지, 어디가 좋았는지, 예전엔 무슨 일을 했는지, 그때 담당했던 가수들이 아직도 활동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학교는 어디에 있는지, 좋아하는 일본 음식은 무엇인지, 일본인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한국 음식은 무엇인지 등등이었다. 질문을 못 알아들어서 몇 번은 선생님이 한국어로 다시 물어보셨다. 민망해서 스미마셍을 엄청 반복했다. 가끔은 질문은 알아들었는데 대답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일본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바로 생각이 안 나서 정적이 길어지곤 했다. 그래도 선생님이 본인 이야기도 조곤조곤 말을 많이 해 주셔서 열심히 듣고 리액션을 했다. 중간중간 이 단어 아세요? 하고 물어보셨는데 그 중 한 80%는 모르는 단어라서 와까리마셍도 엄청 반복했다. 내가 한국어로 말을 걸었을 때 내 학생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뒤쪽으로 갈수록 머릿속이 점점 하얘져서 아는 단어도 잘 기억이 안 났다. 세상에 '교통'이 헷갈리는 날이 올 줄이야. 사실 이번 학기 평가론 수업에서 말하기 평가 연습을 했을 때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점수를 박하게 주는 엄격한 채점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수님은 후한 채점자든 엄격한 채점자든 잘못된 건 아니고 일관성만 유지된다면 상관없다고 하시긴 했지만, 내가 막상 학습자에 입장에 처해 보니 약간 반성을 하게 되었다. 외국어로 말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지...! 나 같은 채점자를 만나면 좀 상처를 받을 것 같기도 하고 ㅋㅋㅋ 앞으로 더 후한 채점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끝나고 이 업체를 알려준 베키피디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전화 끊자마자 힘들어서 드러누웠다고 말했더니 한 한 달 하고 나면 적응이 좀 될 거라고 해 주셨다. 힘들어도 일단 4주는 성실하게 공부해 봐야겠다. 다시 혼자 단어도 좀 외우고 일본어 콘텐츠도 접하면서 질문거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이 하루만 믿기에는 지금 내 실력이 너무 부족한 상태니까...
일본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서, 선생님이 예전에는 일본에서는 일본 음식만 먹었는데 최근에는 한국 음식을 비롯해서 여러 외국 음식들도 많이 먹는 분위기라고 하셨다. 특히 한국 음식은 김치찌개 같은 건 다 알고, 나물도 '나물'이라고 부르면서 먹는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일식을 많이들 먹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신기한 기분...! 그러면서도 일본에서는 카레를 많이 먹는데 왜 그런지는 본인도 모르겠다면서 웃으셨다. 나도 반갑게 아 저도 카레 좋아해요! 하면서, 일본식 카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일본에는 카레 전문점이 많다는 이야기도 하셔서, 나도 코코이찌방야를 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내가 예전에 도쿄에서 'カレーは飲み物。'(카레는 마시는 것.)라는 이름의 카레집을 보고 놀라서 웃었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선생님도 웃으셨다.

잊고 있었는데 역시 외국어로 말한다는 건 쉽지 않다. 영어도 쉽지 않지만 제2외국어가 되니 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아는 단어나 문법이 적으니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의 폭이 좁은 게 속상하다. 이게 또 단어 몇 개 당장 외운다고 바로 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더 답답하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꾸준히 쌓아 가야 하는데 그렇게 성실하기란 쉽지가 않지. 그래도 이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면 적어도 청해는 조금 늘고 입도 조금은 트이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이렇게 답답한 내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반응도 해 주고 맞는 표현도 알려줘야 하는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동병상련도 좀 느꼈다. 나는 내 학생들에게 이 정도의 정성으로 반응을 하고 대화를 해 주었나 하는 반성도 좀 하게 된다. 답답하다고 대충 넘겨 버린 적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건드려 주면 더 잘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건데. 이런 생각이 드니 내가 버벅거릴 때마다 선생님은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마음이 더 조급해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언어를 떠나서 나보다 훨씬 경력도 경험도 많은 분이니 그렇게까지 답답하진 않으셨겠지만, 내 마음이 그렇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더 할지는 모르지만, 우선 4주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