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2/ 한글박물관 필드워크
이번 학기에 듣는 수업 중 한국문화론 수업에서는 중간고사 대신 필드워크를 한 번 다녀와야 한다. 발제 같은 조를 맡았던 D 선생님이 나와 성격이 잘 맞았는데, 특히 계획을 미리 세우고 뭐든 빨리 해치워 버리는 걸 좋아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래서 D 선생님과 수업이 없는 중간고사 기간에 같이 필드워크를 가기로 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한글박물관으로 정했는데, 마침 <친구들아, 잘 있었니?>라는 제목의, 교과서 한글 동화를 주제로 한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학부생 때 다녀와서 알고 있는 상식: 한글박물관에는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가 있고 기획 전시는 기간을 정해 두고 하는 전시라 시기마다 다르다. 학부생 시절에 갔을 때는 국어정보학 관련 내용의 전시였다.) D 선생님과 함께 발제한 게 한국 문화 중에서도 집단주의, '우리주의'에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동화야말로 늘 그 사회의 중심이 되는 가치관과 금기를 담고 있기 마련이니까 우리 주제와도, 그리고 수업 전체와도 연관될 수 있는 전시가 아닐까 했다.


막연히 동화 관련 내용만 있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도 더 문화론 수업에 적절한 내용의 전시였다. 각기 다른 교육 과정에서 편찬되었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들에 나온 동화와, 그 동화의 근간이 되는 옛 문헌 속 설화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국 문화 요소가 실제 사회에 반영되어 나타난 사례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 효도와 우애, 도깨비나 산신령과 같은 상상 속의 존재들, 까치, 호랑이, 토끼, 뱀 등 한국인들에게 친근한 동물들 등을 테마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었다. 곳곳에는 옛이야기들을 말로 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화기가 마련되어 있었고, 관련된 공연 영상 자료도 여러 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시 중간에는 국어 교과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한국 문화의 변화와 한글 맞춤법의 변천사 파트가 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 알고 보면 그 어떤 문서보다 가장 정치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교과서에서 다루는 '내용'은 그 당시 한국 사회에 어떤 문화 코드가 있었는지를 반영한다. 가령 반공 관련 내용이 교과서에 실린 시기가 있었고, 가정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명확히 분리되어 서술되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닌 것처럼. 또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전후의 맞춤법 변화도 흥미로웠다. 분명 학부 때 한 번쯤은 배웠을 내용일 텐데 생소한 내용도 있어서 좀 반성했다. 아직 공부가 많이 필요하구나.



전시물 배치 구도가 흥미로웠던 곳들도 있었고, 벽면에 전시의 길잡이처럼 써둔 글귀들도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다. 특히 프로젝션을 많이 활용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공간의 3면을 프로젝션으로 가득 채운 요 공간이 좋았다. 전래동화 책 속에 뛰어든 느낌! 그리고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모션을 취하면 정말 책장이 넘어가는... 뭔가 인터랙티브한 프로젝션 구간도 있어서 동영상을 찍었는데 티스토리에는 어떻게 업로드하는지 모르겠다. 동영상 업로드 왜 안 돼...? ㅠㅠ (대표 이미지 추출까지만 되고 영상 첨부가 안 되는데 이걸 읽는 누군가가 해결 방법을 아신다면... 알려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손으로 만지고 움직이면서 내용을 확인하도록 하는 전시물도 있어서 아이들이랑 오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세련되면서도 친근하게, 그리고 어느 정도의 활동성도 느낄 수 있게 전시가 구성되었다고 느꼈다. 담당자 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실상 한글박물관 방문 목적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굿즈! 그런데 우리가 전시 관람을 마치고 굿즈샵에 갔더니 점심 시간이라 운영을 안 하고 있었다. 그래서 D 선생님이랑 잠깐 나가서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 한 잔씩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전공과 진로, 교수님들, 수업, 스터디, 보고서 주제...... 전공스몰토크는 정말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이야기를 했는데 해도 해도 더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은 기분...! 서로 진로 방향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많아서 더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공부와 일을 함께 하는 게 좋다는 거. 분야 자체 특성상 일을 하면서(=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전공 공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일이 많기도 하고, 확실히 주기적으로 통장에 꽂히는 돈이 있다는 것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된다. 그런 쪽에 불안함이 생기면 외부 요인에 휩쓸리느라 정작 공부에 잘 집중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어쨌든 생활을 조금이나마 지탱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이 있는 상황이라면, 주변에 덜 휩쓸리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은 방향으로 해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도 나도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생활이 힘은 들지만 잘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서로 다독여 주었다.




정신없이 수다를 떨고 나서 다시 한글박물관으로 돌아와 굿즈 구경을 신나게 했다. 정말 갈 때마다 눈 돌아가는 굿즈가 많은 곳이다. 선물용으로 마스킹테이프와 샤프를 사고, 내 굿즈로 안경닦이와 책갈피(이자 자 겸 페이퍼나이프 겸 비녀?)를 샀다. 책갈피는 살까 말까 하다 샀는데 뒷면에 새겨진 명언도 너무 마음에 들고(완전 대학원생 맞춤형 명언) 동봉된 한글 설명서가 귀여워서(외국인 겨냥 굿즈였던 것 같다) 포장을 뜯고 나서 더 만족했다. ㅅ을 산 것은 역시 내 이름의 첫 자가 ㅅ이니까! 약 6년 전 한글박물관에 갔을 때에도 ㅅ을 테마로 표지가 꾸며진 노트를 샀었다. 공연 관람 후기 노트로 쓰고 있었는데 이젠 공연 볼 일이 많이 없어졌지만... 괜히 애틋하게 생각이 나서 집에 와서 그 노트도 꺼내 보았다.
예상보다도 너무너무 즐거웠던 필드트립이었다. 근래 가장 행복해했던 것 같다. 필드트립 보고서도 최대한 빨리 써 버려야겠다. 그리고 기말보고서 주제도 찬찬히 고민해 봐야지. 설화나 동화와 연결되는 주제를 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