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8/ 첫 투고
지난 학기인 석사 1학기에 유 선생님 형태론 강의를 듣게 되었다. 학부 때 좋아하던 선생님이고 나와 스타일도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수업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우선 선생님의 강의가 알찬 만큼 힘들다는 걸 알았고, 내가 근 3년 동안 국어학 공부를 쉬었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고, 무엇보다 국어학이 아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들어왔기 때문에 웬만하면 교원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과목을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원래 들으려던 과목을 놓쳐 버렸다. 원래 계획보다 한 과목쯤 덜 들어도 큰 문제는 없긴 했지만, 그래도 1학기에 바짝 수업을 들어 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신입생이었던 혜수의 꼬드김에 넘어가 결국 변경 기간에 형태론을 신청하고 말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 선택이 나의 석사 생활을... 완전히... 뒤집어 놓게 되었다... 두둥
국문과 대학원 수업은 보통 중간고사 기간쯤 과제를 제출하거나, 기말 보고서 계획서를 제출한다. 형태론 수업은 매주 과제가 있었고, 중간고사 기간이 좀 지났을 때 기말 보고서 과제를 내야 했다. 대체 무슨 주제로 써야 할지 학기초부터 걱정은 많았는데 영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대충 생각 중이던 주제는 있었지만 아직 조사는 덜 했을 때, 수업 시간에 내가 슬쩍 던진 질문 하나에 선생님은 좋은 기말 보고서 주제가 될 것 같다고 화답하셨다. 그것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이... 이걸로 쓰면 다른 사람과 주제가 겹칠 일은 없겠다 싶어서 그냥 그 주제로 써 보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다행인 것이, 내가 원래 쓰려던 주제로 보고서를 쓴 사람이 있더라... 하마터면 주제가 겹칠 뻔했다.
사실 학부생 때 유 선생님 형태론 강의에서 기말 보고서 주제를 감탄사로 잡았다가 폭삭 망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감탄사는 건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얼떨결에 다시 감탄사와 조우하고 말았다. 내 주제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나 기억이 떠올랐을 때 말하는 '아, 맞다!'에서의 '맞다'가 감탄사인지 하는 것. 현재 대부분의 국어 사전들에서는 '맞다'는 오직 동사로만 처리되어 있다. '맞다'가 동사라면 '맞다!'가 아닌 '맞는다!'의 형태가 맞고, 그래서 넷플릭스를 보다 보면 간혹 자막이 '맞는다!'라고 아주 어색하게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사한 바로 연세 한국어사전만이 '맞다'가 형용사적으로 활용한다는 정보를 표시하고 있었고, 한글학회에서 몇십 년 전에 집필한 사전에서 형용사 품사를 주고 있긴 했지만, 설령 이 '맞다'가 형용사적 활용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완벽한 설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원래의 동사(또는 형용사) '맞다'의 의미, 그러니까 정오(正誤)의 판단이라는 의미가 '아, 맞다!'에는 들어 있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감탄사로 볼 수 없을까? 하는 것이 나의 의문이었고, 기말 보고서에는 그것을 판정할 수 있는 형태적, 통사적, 의미적 기준을 세워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여기까지가 자료를 조사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5월부터 과제를 제출한 6월(정확히는 내 생일날)까지의 과정.
보고서를 채점한 선생님이 발표나 투고 생각이 있으면 면담을 하러 오라고 하셨다. 내가 여름집중학기를 수강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7월에 다시 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지난한 수정이 이루어졌다. (이걸 지난하다고 하면 대체 학위논문은 어떻게 쓸 건지?) 선생님은 목차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 내 목차를 몇 번 도수치료하듯 엎어 버리셨다. 결과적으로 훨씬 깔끔해진 것 같다. 목차를 갈아엎으면서 동사-형용사 품사 통용에 대한 내용도 추가되었는데 전보다 내용이 풍성해진 것 같아 더 마음에 든다. 역시 이런 사람이 교수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이 내가 '또한'을 많이 쓰는 글버릇을 갖고 있는데, 선생님의 글버릇도 그거라고 하셔서 아주 반가웠다. 역시 나와 결이 맞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내가 지도교수님을 유 선생님으로 정한 줄 알고 있던데 사실 아직 아니다...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드디어 오늘 선생님께서 투고를 완료하셨다고 연락을 하셨고, 이제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 심사 결과 수정 후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면 또 몇 주는 수정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종 게재 결정이 난다면 11월 말에 내 글이 공식적으로 학술지에 발표된다. 기분이 이상하다. 이거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들 만약 제가 투고에 성공한다면 여러분은 제 이름을 논문이나 보고서에 정식으로 인용할 수 있게 됩니다!!! 와!!!!!
1년 전만 해도, 아니 3월에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벌써 내 글이 박제되어도 되는 걸까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도 잘 됐으면 좋겠다. 박사를 가든 안 가든 학위논문 이외의 글을 발표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기회인 것 같아. 이 불안한 떨림을 안고 내일의 석사생활을 위해 차분히 (남은 일을 처리하며) 밤 시간을 보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