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생 친칠라/가르치기

210929/ 가르치며 반성하는 나날

친칠라 2021. 9. 29. 21:27

  아르바이트로 한국어 화상 강의를 하고 있다. 한 회에 한 시간, 일주일에 세 번 진행하는 정규 수업을 2개, 월화수 저녁마다 1시간씩 무료 체험용 한글 익히기 수업을 1개 진행하고 있으니까 일주일에 총 아홉 시간 강의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적어 보이지만 수업 준비 시간까지 생각하면 호락호락한 스케줄은 아니다. 수업 준비 시간은 대략 수업 시간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걸리는 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학교 연구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도 있고, 대학원 수업도 듣고 스터디도 하려니 일주일 스케줄이 꽉 차 있다.

 

  바쁘단 걸 전시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누군가를 가르치는 시간은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교수자로서의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하고 학습자로서의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한다. 전자는 주로 학생들에게 내용을 더 잘 설명해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 그렇다. 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고 싶은데, 때로는 나의 지식 부족으로, 때로는 나의 요령 부족으로, 때로는 영어 실력 부족으로(내가 맡은 수업은 모두 기초 수업이라 거의 영어로 진행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제공받는 교재나 자료에는 필요한 만큼의 설명이 자세히 되어 있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학생들이 드라마 등을 보고 배워 온 표현에 대해 질문할 때처럼, 교재 밖의 한국어를 설명하려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알려주는 게 적합한지 늘 고민이 된다. 보통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그 문법의 본격적인 원리보다는, 어떨 때 이런 말을 쓰고 어떨 때는 안 쓰는가, 이런 말은 한국어 원어민에게 무슨 느낌으로 들리는가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예외도 있는 게, 정규 수업 중 한 반에 굉장히 학구적인 궁금증을 많이 가진 학생이 하나 있다. 그 학생은 다소 어렵더라도 원리를 정확히 설명해 줄 때 만족한 표정을 짓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 질문을 하면 일부러 정확한 전공 용어를 섞어 설명을 해 주려고 한다.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맙게도 늘 도움이 되었다며 인사를 해 준다. 처음엔 다른 학생들에 비해 활발히 말하는 편도 아니고 표정도 심각한 편이라 '성격이 많이 내성적인가? 아니면 수업이 재미가 없나? 그것도 아니면 너무 어려운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그 학생에게는 수업이 너무 쉽고 느려서 말을 잘 안 하는 것이었다. 속도를 약간 올리고, 질문을 더 받고, 가끔 질문이 없어도 이것저것 교재 밖 이야기를 곁들여 주니까 처음보다 참여도가 올라갔다. '학습자의 참여도가 떨어진다'는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도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는 걸 확 실감했다. 이 학생이 있는 반은 다른 학생들도 질문을 활발히 하는 편이고, 시키지 않아도 한국어로 먼저 더 말을 하려는 편이라 서로서로 학습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갑자기 맡게 된 반이었고 학생 수도 5명이라 좀 많아서 약간 버거웠는데, 일단 궤도에 올라서고 리듬이 생기니 나도 즐거운 수업이 되었다.

 

  교수자로서 반성을 하게 되는 또 다른 경우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학생들로 반이 구성되었을 때이다.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일 없이 반을 이끌고 가야 하는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위에서 말한 정규 수업 말고 다른 수업은 학생이 원래 2명이었고, 이 두 사람은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기보다는 모범생처럼 내 설명을 잘 듣고 잘 이해하고 물어보는 말에 잘 대답하는 편이었다. 비교적 정적인 이 수업에 최근에 한 학생이 새로 들어왔는데 일단 목소리가 큰 편이다. 강한 발언권을 가진다는 비유적 의미이기도 하고, 실제로 목소리 자체가 크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두 학생에 비해 질문이나 요청사항이 많은 편이며 한국어로 말할 기회도 더 얻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도 아직 이 학생에 대해 적응하는 중이라 수업 진행이 약간씩 흔들리고 있다. 최근 수업에서는 원래부터 있던 두 학생의 발언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체 불만이나 요구사항을 잘 말하지 않는 학생들이지만 내심 불만이 쌓였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어쨌든 수업이라는 게 한 사람만을 위해 돌아가면 안 되는 거니까, 이제부터는 일부러라도 최대한 공평하게 발언 기회를 주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내가 주는 발언 기회 외에 먼저 뭔가를 물어보거나 하는 것까지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갑자기 스타일이 확 다른 학생이 들어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약간 성가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크게 반성했다. 그 학생이 성가신 게 아니라 내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다른 특성을 가진 학생들을 조화롭게 이끌고 가는 것도 내 숙제겠지.

 

  수업을 하며 학습자로서의 스스로를 반성하는 일에 대해서도 쓰려고 했는데, 이미 너무 주저리주저리 많이 쓴 것 같다. 여기는 꾸준히 오래 쓰려고 만든 공간이니까 글 하나하나에 너무 힘을 빼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메일로 질문이 왔는데 연음을 궁금해해서... 다소 얼렁뚱땅이지만 나름 정성을 담아 길게 길게 설명해 주었다.
수업하면서 제일 즐거울 때 = 회심의 드립이 잘 먹힐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