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6/ 재미없어와 지루해와 심심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학습자란 교수자를 얼마나 즐겁고 뿌듯하게, 그리고 힘들게 만드는가. 한국어 강의를 하다 보면 반드시 허를 찌르는 질문들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를테면 '당신'과 '여보'와 '자기야'의 차이가 무엇인지. (나는 질문을 듣자마자 이거 K-드라마에서 들었지?! 하고 되물었다. 역시 맞았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했지만, 언어라는 게 아무래도 개인차도 존재하는지라 나중에 이 학생들이 실제 한국인과 얘기하면서 '뭐야 그 선생님이 말한 거랑 다르네'라고 생각하면서 실망하게 될까 봐 조금 겁이 난다. 아니 그렇다고 내가 모든 맥락을 다 설명해 줄 순 없는 거잖아?ㅠ 늘 고민이 드는 지점이다. 참고로 내가 어떻게 설명했는지를 남겨 보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기본적으로 2인칭 대명사이고, 부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쓸 수 있으며, 존경의 뜻을 나타내지만 특이하게도 가끔 잘못 쓰면 insulting하게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보통 진짜 존경을 나타내고 싶으면 차라리 '선생님, 교수님, 사장님' 같은 단어를 쓴다. '여보'는 부부끼리 서로를 부르는 honey 같은 애칭인데, 결혼 안 한 커플들도 종종 쓴다. '자기야'는 부부끼리도, 결혼하지 않은 커플 사이에도 쓸 수 있다. 여기까지 말했더니 한 학생이 여자인 친구들끼리는 서로에게 '자기야'를 쓰지 않느냐고 물어서 그것도 맞다고 해 주었다. K-드라마가 생각보다 꽤나 풍부한 교보재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다 설명하고 나서 근데 솔직히 개인적으로 나는 '여보'도 '자기야'도 누구를 만날 때 써본 적이 없다고 알려줬다. 나는 늘 이름을 불렀다고. 앞으로도 아마... 너무 오글거려서... 저런 말은 안 쓰지 않을까...? '오글거린다'는 말을 영어로 뭐라 해야 할지 몰라서 얼굴을 찌푸렸는데 다들 대충 알아듣는 것 같았다. 역시 비언어적 표현이 이렇게 중요하다.
오늘은 '어려워요'를 알려주다가 한 학생이 '힘들어요'는 어떻게 다르냐고 물어봐서 설명해 줬다. 그걸 설명해 주고 나자 누군가가 갑자기 'boring'은 어떻게 말하냐고 물어봐서 '지루해요'와 '재미없어요'를 알려 줬고, 그러자 '심심해요'는 또 뭐가 다르냐는 질문이 날아왔다. 이런 질문들을 받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의 한국어에 대한 감각이 벼려지는 것 같다. 이것도 어떻게 설명했는지 기록으로 남겨 보자면, '힘들어요'는 어떤 burden이 생겨서 그것이 나의 힘(strength)을 쓰게 만들고 그래서 어렵고 지치게 만드는 것이라고 알려 줬다. '재미없어요'는 다들 이미 뜻을 알고 있었으니 넘기고, '지루해요'는 뭔가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게 지금 boring하고 not interesting한 것이고, '심심해요'는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boring한 거라고 말해 줬다. 근데 사실 아무런 특별한 일이 없을 때 '지루하다'도 쓰긴 쓰니까 아주 정확한 설명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더 좋은 설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꼭 알려주길 바람...) 아무튼 '재미없어요'를 물어본 학생은 빅뱅의 '재미없어'라는 노래를 알고 있다며 링크를 줬고, '심심해요'를 물어본 학생은 마마무의 '심심해요' 노래를 듣고 궁금해져서 물어봤다고 해서 내가 링크를 찾아 반에 공유했다. 구글 클래스룸에도 링크를 올렸다. 정말이지 매번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수업들.

아, 오늘 오전 수업에서는 한 학생이 보여준 단어 외우기 전략이 인상 깊었다. 교재 1권이 끝나서 이제 2권을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바로 들어가면 급한 느낌이 들 것 같아서 한 주 정도 어떻게 쉬어 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동요를 이용하기로 했다. <머리 어깨 무릎 발>로 신체 부위 명사들을, <곰 세 마리>와 <상어 가족>으로 가족 지칭어를 배울 수 있도록 자료를 구성했다. <곰 세 마리>에 나오는 '애기'라는 단어에 대해, 원래는 '아기'가 맞는데 '애기'라고도 사람들이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작게 'egg'를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추측건대 '애기'랑 'egg'가 소리가 비슷하고 둘 다 작은 거니까 연상해서 외우려는 것 같아서 물어봤더니 맞다고 했다. 너무 귀엽고 예전에 내가 영단어 외울 때 생각도 나고 해서 웃었다. 전에 아예 이런 연상법 컨셉으로 단어를 외울 수 있는 단어책이라고 나온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사실 그동안 이 학생이 내가 새 단어를 알려줄 때마다 이런 식으로 가끔 엉뚱한 단어를 중얼거려서 '뭐지? 이거 고쳐 줘야 하나?'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게 이 학생만의 연상 암기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외국어 공부할 때 비슷한 전략 사용했었으면서 그걸 이제서야 깨달은 게 조금 부끄럽다. 다음 시간부터는 기발하다 싶은 연상법은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지지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