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생 친칠라/공부하기

211008/ 외향성 쥐어짜내기

친칠라 2021. 10. 8. 17:04

  나는 MBTI 밈을 좋아하는 편이다. 정식 기관에서 받은 검사가 아니라 대충 인터넷으로 테스트한 거라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사람 성격이 16가지 유형으로 똑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지만 내 경우에는 신통방통하게 맞는 경우가 꽤나 많다. 이것도 바넘 효과 아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아무튼 내가 재밌으면 됐지 뭐. MBTI는 성격 그 자체에 대한 거라기보단 현재 그 사람의 성향에 가까운 거라고 듣기도 했는데, 어쨌든 MBTI가 유행하고 나서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도, 다른 유형의 사람들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래, 이 사람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관심을 표현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그래서 내 MBTI가 뭐냐 하면 INFJ이다. 퍼센티지로 따졌을 때 N만 S랑 좀 왔다갔다 하고, 나머지 I, F, J는 꽤나 견고한 듯하다. 아래는 최근에 주운 INFJ 짤들.

내 안의,,, 수많은 자아들,,,
이거 개인적으로 좀 소름 돋았다. 특히 혼자서 넘어지는 거... 진짜 어떻게 알았지??????
다들 날 이렇게 봐주고 있다면 정말 영광스럽겠군요...

아무튼 말하고 싶은 건 나는 꽤나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거다. 사람들을 만날 때보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다는 점에서 너무너무 그렇다. 낯가림도 있고 말 한 마디 먼저 걸려면 오랜 시간 쭈뼛쭈뼛 고민해야 한다. 내가 먼저 말 걸어줬던 사람들? 내가 그만큼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거니까 감사하도록 해...! 근데 또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은 아니어서, 어색한 침묵을 못 견디고 무슨 말이든 꺼내보려고 하는 것 역시 내 특징이다. 그럴 때도 나는 이미 잔뜩 긴장했기 때문에 뚝딱거리는 편인데, 상대도 같이 긴장한 상황이라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내가 원래 말을 잘 걸고 잘 시작하고 잘 이끄는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아무래도 지금 대학원 수업에서 내 이미지가 그런 것 같다.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지만 과 특성상 발표와 토론이 많은 편인데, 저번 학기에도 각 수업마다 말을 꽤 많이 한 편이긴 했지만 이번 학기는 유독 더하다. 지금 듣고 있는 세 개 수업 중 두 수업은 거의 매번 4-5명 정도로 구성된 소회의실을 열어 토론을 하도록 하고, 소회의실별로 대표자 한 명이 토론 내용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두 수업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발표자 롤을 놓친 적이 없다. (사실 딱 한 번 있는데 그것도 내가 말하려고 입을 떼니까 교수님이 이제 좀 다른 사람이 말해 보라고 시켜서...) 초반에 그렇게 된 이유는 왜인지 내가 들어간 소회의실에 죄다 석사 저학기생들밖에 없어서 어쩌다 보니 내가 MC처럼 토론을 진행해서, 또는 토론 내용을 적어 가며 들은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였다. 그런데 몇 번 내가 계속 발표를 하니까 이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토론이 마무리될 즈음 '선생님 부탁드려요^^'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내가 내용을 그렇게 잘 정리한 것 같지도 않고, 혹시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못 전달할까 봐 두렵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수업 시간에 뭐라도 말을 하려고 하면 손부터 떨리는 사람인데 ㅋㅋㅋㅋ 어쩌다 이런 MC 이미지가 박혀 버린 걸까...... 모든 외향성을 쥐어짜내며 버티고 있는 중이다. 발표를 하고 나서 교수님의 코멘트를 들으며 늘 손을 만지작만지작 주무르면서 스스로를 진정시킨다. 마이크를 다시 끄고 나면 그렇게 안정감이 들 수가 없다. 그래도 또 긍정적으로 보고 아예 이걸 내 캐릭터로 잡고 이번 학기 스스로의 수업 참여도를 높여 볼까 하는 생각도 드는 걸 보니, 어쨌든 대학원 생활이 제법 맞는 모양이다.

 

  대학원에서 이렇게 있는 외향성 없는 외향성 모두 짜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계속 공부를 하든 강사 쪽으로 취직을 하든 계속 외향성을 최대한 발휘해 가며 살아야 하는 분야구나 싶기도 하다. 계속해서 발표와 토론과 강연을 해야 할 테니까...... 따지고 보면 직장 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음 결국 세상 어떤 일을 하든 내 안의 외향성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군. 발제 전날이 되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늘 들지만 유유자적 건물주가 아닌 이상 맞서는 법을 터득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익숙해지기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