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생 친칠라/가르치기

211012/ 선생님 말투

친칠라 2021. 10. 13. 00:59

  이 내용은 '공부하기'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가르치기'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고민을 했는데, 시작점도 시사점도 결국 '가르치기'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동안은 한국어교육 전공치고 국어학적인 사고를 더 많이 한 것 같아서 이번 학기에는 의식적으로 뭐든 한교 쪽으로 생각을 발전시켜 보려고 노력 중이기도 하다.

 

  화요일은 국어학 개론서를 읽는 국어학 기초스터디를 하는 날이다. 요새는 형태론 부분을 읽고 있는데, 오늘 다룬 내용 중 하나가 '단어'의 정의에 대한 것이었다. '단어'라는 게 딱 들으면 굉장히 간단하고 쉬운 개념 같지만 무엇이 하나의 단어인지 결정하기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어떤 개론서를 읽든 몇 번째 읽든 매번 새로운 질문이 튀어나오고 매번 답을 찾기 위해 헤맨다.

 

  한국어의 '단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또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조사이다. 조사는 한 단어인가? 그렇다면 어미는? 결론이 없고 언제나 할 말이 많은 주제. 오늘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조사를 체언과 띄어 쓰지 않는 것은 조사가 의존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정한 것일 터이다. 그런데 만약 띄어쓰기 규정을 정할 때 '조사도 한 단어니까 띄어 쓰자!'는 의견이 나와 그에 따랐다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조사를 더 독립적인 단위로 여기게 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래도 조사가 명사처럼 단독으로 쓰일 수 없는 단위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 '독립적인 한 단어'로서의 이미지가 더 박히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숙제를 검사하다 보면 체언과 조사를 띄어 쓰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밥 을 먹어요'라든가, '학교 에 가요'라든가. '이다'가 조사인지 아닌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선생님 이에요'와 같은 경우도 많고. 내 수업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어권 나라의 학습자이거나, 적어도 영어에 친숙한 학습자들이기 때문에 '조사'라는 개념을 그들의 모국어 또는 제2언어(영어)에서 접할 기회가 적었을 것이고, 그래서 체언과 별개의 단위로 인식해 띄어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스터디가 끝나고 나서, 어쩌면 그건 내가 가르치는 방식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교재의 글을 읽어 줄 때, '밥 을 먹어요'와 같이 '밥'과 '을' 사이에 휴지를 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첫 번째 이유는 평소 말하는 것처럼 '밥을'이라고 말하면 발음이 뭉개져서 잘 못 들을까 봐, '밥을'이 새로운 단어가 아니라 이미 배운 '밥'이라는 단어에 '을'이 붙은 건데 그걸 캐치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인 듯하다. 두 번째로는 조사가 학습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보니 좀 더 강조해서 말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휴지를 더 두는 것 같고. 그렇다면 학생들이 조사 띄어쓰기 오류를 범하는 것은 나의 '선생님 말투' 때문인지도 모른다. 좀 더 명료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나의 의도가 오히려 오류를 유발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뭔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안 그래도 최근에는 내가 너무 '선생님 말투'로 말하고 있나 싶어서, 문장을 몇 번 반복한 후 마지막 한 번은 일부러 좀 더 빠른 속도로, 좀 덜 정확한 발음으로, 그러니까 정말 한국어 모어 화자가 평상시에 말할 법한 말투로 말해주고 있기는 했다. (한 학생이 수업에서의 인위적인 한국어 말투 말고 실생활에서 쓰일 법한 한국어 말투를 더 접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어 온 적이 있었다. 학습자들도 '선생님 말투'와 실생활 말투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살짝 놀랐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유튜브를 추천해 줬는데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또 생각나는 일화 하나. 얼마 전에 또리를 통해 한 한국어교육 콘텐츠에서 제공하는 음성 자료를 듣게 되었는데, 정말 소름 돋게 내 '선생님 말투'랑 비슷했다. 선생님이 되면 다들 자동적으로 그런 말투를 쓰게 되는 걸까? 아니면 나도 내가 전에 무의식중에 접한 다른 '선생님 말투'를 따라하게 되는 걸까? 이런 말투가 정말 학습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한국어 발화를 듣고 말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을까? 초급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짧은 문장, 단순한 표현 위주로 문장을 만들기 때문에 문법적으로는 맞지만 다소 어색한 문장들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억양도 표현도 실제 한국인의 한국어와는 동떨어진 발화들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점에 대한 연구가 있나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이를 '외국인 말씨'라고 부르며 그 유형별 기능을 연구한 논문이 하나 있었다. 천천히 읽어 보면서 더 고민해야겠다.

안지가 그려 준 다람쥐. 얼레벌레 선생님으로 사는 내 이미지랑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