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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생 친칠라/가르치기

211026/ 참관하기와 참관 당하기

by 친칠라 2021. 10. 27.

  어제, 그러니까 월요일 밤 무료 한글 수업에 신입 선생님이 참관을 들어오셨다. (나도 이제 겨우 세 달 정도 됐으니 아직 신입이라면 신입이지만.) 내가 그 수업을 맨 처음 맡았을 때 원장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참관 들어오셨던 이후로 처음이었다. 매주 같은 내용을 반복하다 보니 슬슬 매너리즘이 오려고 했는데 새삼 다시 긴장되는 느낌...! 부담스러워서 싫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새로운 분이 계속 들어오시는 이상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끼면서도 딱히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던 차라(ㅋㅋ) 좀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다른 분들 참관을 들어갔을 때 그분들도 그렇게 느끼셨겠지? 개인차는 있겠지만 뭔가 그런 평가당한다는 기분은 누구에게나 유쾌하지만은 않으니 말이다. 물론 이 참관은 평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수업 방식을 참고하고 익히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전에 내가 참관하러 들어갈 때에도 괜히 '아 나 때문에 괜히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담스러우시겠지?' 싶어서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때 다른 선생님들 수업을 참관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기는 했다. '같은 내용도 이렇게 다르게 말할 수 있구나, 이런 점은 나도 도입해야지' 하면서. 사실 선생님들마다 방식이 다를 뿐 내가 보기엔 다 너무 잘 하셔서 '이런 점은 반면교사 삼아야지' 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참관을 들어오신 신입 선생님은 이 기관에서나 신입이시지 사실 이전에 강사로 일하셨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내 줌 강의실에 그분이 들어오셨을 때 갑자기 더 떨려 왔다. 학생이 많이 안 들어오길 바랐는데 하필 어제는 12명이나 들어왔다. 평소에도 다른 분들 수업보다 내 수업에 학생 수가 더 많은 편인 것 같은데, 어제는 역대급이었다. 덕분에 정신이 배로 없었다. 최근 몇 주 동안은 소극적인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서 오디오도 비디오도 잘 틀지 않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걱정이 더 됐다. (내가 무조건 마이크를 켜라, 영상을 켜라 하기가 조심스러워서 별 말 안 했는데 앞으로는 켜 줬으면 좋겠다고 유도 멘트를 할까 싶다.) 그렇지만 다행히 어제의 학생들은 대체로 적극적인 분위기였고, 한국어나 한글을 어느 정도 아는 학생들도 있어서 수업이 비교적 술술 나아갔다. 나도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괜히 학원 관련 얘기도 더 하고 텐션도 올라가고, 학생들 목소리에 리액션도 더 크게 했던 것 같다. 평소에도 매번 이렇게 한다면 인기 강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제 한 학생이 수업이 끝날 때 나에게 줌 DM으로 ㅋㅋㅋ "you have a beautiful smile !!!"이라고 보내주기도 했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어제 나의 미소... 나의 한 톤 높인 목소리... 신경 쓴 영어 발음... 평소보다 더 매력적이었을지도...! 하지만 아무도 참관을 들어오지 않은 오늘, 내가 보기에도 텐션이 어제보단 살짝 떨어졌다. 너무나 예상한 바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좀 실망스럽기도 하다. 나는 왜 모든 수업에 진심을 다하지 못하는가. 근데 또 한편으로는 사람인데 어쩌겠어 싶기도 하고.

 

  아무튼 간만에 누군가 내 수업에 참관을 들어온 것을 보니, 교생실습 때 내 첫 수업에 두 분의 선생님이 뒤에 들어오셔서 지켜보시고 평가를 해 주셨던 날이 떠올랐다. 나는 1학년 10개 반에 모두 한 차시씩 들어가 고전 시가 파트를 가르쳐야 했는데, 그 부분이 1학기 중간고사 범위에 포함된다고 했다. 말이 교직이수지 사실 그런 실제 수업은 연습해본 적조차 없었고, 내가 국어학도 현대문학도 아닌 고전문학을 가르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데다, 시험 범위에 포함되는 내용이라고 하니 두 배 세 배로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 선생님들을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며 수업을 하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정말 신기한 게 학생으로서 책상에 앉아있을 땐 전혀 몰랐는데, 교사의 입장에서 교탁에 서니 교실이 한눈에 다 보였다. 스물다섯 명 정도 되는 학생들 중 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지, 누가 고뇌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지, 누가 졸고 있는지가 빠짐없이 다 보였다. 그러니 교실 뒤 사물함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계신 두 선생님이 안 보일 리가. 또 스물다섯 쌍의 눈과 귀가 모두 나를 향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여차저차 수업을 마무리했고 보완점과 칭찬을 모두 들었으며 다른 수업들에는 선생님들 없이 나만 들어가게 되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9번의 수업도 무척이나 긴장하며 들어가긴 했지만, 역시 가장 긴장되고 가장 힘들었던 건 그 첫 수업이었다. 뒤로 갈수록 나도 아마 더 내용 설명 면이나 시간 관리 면에서 좀 능숙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지막 수업을 첫 수업에 비해 눈에 띄게 잘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누가 내 수업을 봐준다는 건 굉장히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그럴 때 더 빠릿빠릿 잘하게 되는 면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그때도 내가 수업하기 전, 여러 과목의 여러 선생님들 수업을 사전에 참관했던 것이 확실히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실습을 모교로 갔고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내가 고등학생일 때도 계셨던 분들이라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 수업을 듣는 느낌이 나는 한편, 그때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선 이런 말로 진행을 하는구나, 이런 내용은 이렇게 설명하는구나, 아이들 수준과 성향을 고려해서 이렇게도 다가갈 수 있구나. 과목과 스타일을 막론하고 누구에게서든 배울 수 있었다. 문득 그때 선생님들도 참관 들어간 나를 보며 부담스러운 마음이 드셨을지 궁금해진다. 나라면 경력이 몇십 년이 되어도 부담스럽고 부끄러울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정말 한국어 강사로 일을 하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더 의연하고 단단하고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간만에 교생실습 생각이 났으니까 교생실습 때의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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