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내가 공연 일을 할 때 나의 역할은 '운영자'에 가까웠다. 운영팀은 아니었고 연출 및 제작팀 소속이었지만, 역할을 크게 '퍼포머(다른 좋은 말이 안 떠오른다)'와 '운영'으로 나눴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내가 하는 일 중에도 분명 연출안 제작이나 대본 작성, 영상 시놉시스 및 콘티 작성 등 창의력을 발휘해서 뭔가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무대가 세워지면서부터는 운영 관련 업무의 비중이 늘어났다. 모든 일이 계획된 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게 어떤 문제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현장에서 수정해야 할 일은 없는지 등등을 체크하는 역할 말이다. 그런 일을 하면서 어떤 공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퍼포머(가수)의 실력이나 끼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 뒤에서 이런 운영의 역할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능력과 노력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막말로 판을 깔아줄 사람이 없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재주꾼이라도 재주를 마음껏 펼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비단 공연업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 들어 아주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지금 비록 아르바이트 정도이긴 하지만 아무튼 한 한국어 교육 기관의 강사로, 그러니까 일종의 '퍼포머'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관의 운영이 제대로 받쳐 주지 않으면 그것이 내 사기에도, 수업의 질에도 영향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알았냐구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유연한 시스템이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만, 학기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학생들이 각자 한 달씩 결제를 연장하는 방식이라 한 반의 학생들의 수업 만료일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누가 재등록을 했고 누가 안 했는지 미리 알려라도 주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게 나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나에게 미리 이번에는 재등록이 어려울 것 같아서 언제까지만 수업에 온다고 이야기해주는 학생도 있지만,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잘 나오던 수업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도 꽤 있다. 대신 그 학생들도 대부분 나에게 며칠 내로 재등록을 못 하게 되어 아쉽다는 연락을 주긴 했다. 환장 포인트는 그 학생들이 모두 학원 측과는 이야기를 마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원 측은 이 학생들의 재등록 불발 여부를 인지했으면서도 나에게 미리 알려 주질 않는다. 그러니 나의 입장에서는 '노 쇼'가 종종 발생하는 건데 이게 나의 사기를 굉장히 꺾어 놓는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는데 결국 모두 기관장이라는 사람이 운영을 제대로 못 하고 있어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애초에 실무자를 따로 두지 않고 기관장이 이걸 다 커버하려고 하는 게 문제 같기도 하다. 기억할 것, 챙길 것들을 다 알고 운영을 잘 해줬다면 또 모르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그놈의 '운영'에서 계속 펑크가 생기니 조직에도 정이 떨어지고 내 일에도 의욕이 떨어진다. '한국어교육'이라는 전공이 왜 필요한지, 왜 이 분야에 석박사생이 필요한지, 이런 부분들을 이해시키는 것도 쉽지가 않고, 수업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지원되어야 하는 것들을 이해시키는 것도 너무 어렵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이 내 수업의 질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참 속이 상한다. 어디에서든 마찬가지인 건데 내가 너무 순진한 걸까? 어쨌거나 내년 1학기 전에는 그만둘까 싶은데, 이후에 일하게 될 곳이 어디든 여기보단 운영 체계가 잘 잡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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